한국화가 김현철 '짐작'전 14일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한국화(동양화)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큐레이터·평론가·관람객들의 관심·인식이 낮으니 미술관·갤러리에서의 전시는 드물고, 비평은 보이질 않는다. 악순환이다. 그럼에도 전통에 뿌리를 둔 작가들의 치열한 작업은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는 풍성해진다.

한국화가 금릉 김현철(60·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의 ‘짐작-우리는 초승달을 보고도 만월을 그릴 수 있다’ 전(아트레온갤러리·서울 신촌로)을 찾았다. 진경산수 풍경 20여점이 내걸렸다. ‘단아’ ‘격조’ ‘품격’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부산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알음알음 찾은 이들의 상찬이 빈말이 아니다.

푸른 바다와 수평선 위의 섬, 바다만큼 넓은 하늘이 자리한 화면은 군더더기 하나 없다. 풍경 너머의 광대한 자연이, 자연에 기대 살아오는 우리의 삶 이야기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작가의 깊은 내공 덕분이다.

작가는 30여년 한국·중국의 산수·초상 등의 임모(臨摹)를 통해 화론·화법을 연구하고, 전국을 발품 팔아 사생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진경산수를 체화,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바다의 푸른색은 그저 푸르지만은 않다. 독특한 질감·색감의 아사천(삼베)에 겹겹이 예민하게 스며들되 짙고 옅음이 어우러져 바다에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아크릴이지만 쌓아가는 서양기법이 아니라 동양의 먹 번짐효과다. 갈고닦은 모필의 필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아내는 여백의 미도 돋보인다. 그래서 ‘청량제색’ ‘해남도’ ‘섬-독도1’ ‘제주진경’ ‘청령포’ ‘인왕서색’ ‘낙산사 홍련암’ ‘단양 도담삼봉’ 등의 작품은 실경산수를 넘어 진경산수에 이른다.

작가는 전통을 “한 시대에 머묾이 아니라 동시대를 대변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전통 공부는 전통을 위한 게 아니라 제 그림을 위한 공부, 겸재든 곽희든 제 공부의 과정”이었다. 그의 역량은 봉화의 청량산·청량사를 담은 ‘청량제색’에서 단박에 보인다.

전시장에선 실경산수와 진경산수, 같은 곳을 그렸지만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이 서로 다른 그림을 낳은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청령포’를 마치 산에 둘러싸인 섬으로 표현했다. 단종의 외로움, 영월 청령포의 역사성까지 담은 것이다. 그의 작품이 더 생생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이자 진경의 맛이다. 또 아사천·비단·한지 등의 재료에 배채(화면 뒷면에 채색하는 화법) 등 다양한 화법으로 그린 수묵·수묵채색·수묵담채, 기록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14일까지. (02)364-8900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