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대루  100x200cm 아사천에 진채  2013


병산, 철학의 색조가 빚어낸 조형의 공간

김현철은 하회마을을 지나 병산서원에 주목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로 손꼽히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듯, 한 번 다녀간 사람은 다시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긴다. 병산서원의 진입로, 솔밭과 마주보는 깨끗하게 보존된 서원, 자연환경과의 어울림은 각별한 미를 뇌리에 각인시킨다.
그의 작업은 서원이란 전통적 표상을 모던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하나의 독자적 양식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병산이 갖는 특별한 에너지와 가치관을 함축한다. 여백이 지배하는 그의 작업은 사색의 여지를 남긴다. 그림 앞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 이것은 병산서원 앞에 펼쳐진 무념의 철학의 공간과 푸른 절벽이 없었으면 가능할 수 없었다.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翠屛宜晩對)"
이것은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싯구이다.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는 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의 작업은 메시지를 설명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과감하게 버리면서 담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시간에 의해 결코 변하거나 퇴색하지  않는 핵심적인 이미지를 화면의 중앙에 평면적으로 배치하고 절제된 조형과 색조대비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가 구사하는 초시간적인 기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부추기며 그 철학적 공간 속으로 빠져들어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김수영(독립큐레이터,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