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모본 - (0027) 곽희(북송)/조춘도, 108X 157cm, 비단에 수묵담채, 1997
                   
(5회 개인전 서문)
 '임모와 사생'展
제비울미술관
2002. 11.01 - 11.30

제대로 된 노력이 다다른 길 - 김현철 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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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철의 작업에 대하여 이제는 제대로 인식할 때가 된 것 같다. 1996년부터 대구를 포함하여 이번까지 다섯을 헤아리는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과 지금 보이는 태도를 나타낸 지가 내년으로 10년을 채운다. 그러므로 덜 알려 지거나,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것은 언뜻 당연하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10년 전 쯤에 그가 변화를 나타낸 이래 우리들에게 보여준 바는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정중히 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의 변화는 10년 이상된 영향을 되새김질하던 끝에 결단하게 된 결과라는 점,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 그랬다는 점 들을 감안하면 그 중량감이 짐작될까? 방향전환을 마음먹은 이래 그는 중국이나 우리의 미술사에서 이름난 화가의 명작을 여러 차례에 걸쳐 모사하는 일을 쉬임없이 해왔다. 곽희의 대작 여러 점을 시작으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화성이라 할 정선이  최고의 역량을 쏟아 그린 중요작 여러 점 그리고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심주의 대작을 모사해 왔다. 최근에는 초상화로 관심을 넓혀 명작을 모사하는 것을 보았다. 대작일 경우 해를 넘겨가면서도 대결하다시피 함으로써 김현철이 이것을 얼마나 중요한 과정으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이토록 열심인 것은 그의 스승이신 최완수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예부터 가장 주요한 수련의 하나로 강조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가까운 100년 동안 우리의 경우 오히려 이를 타기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생각하면 적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근대라고 한 이래 우리의 경우 우리의 문화전통은 가능하면 버리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인식이 몸에 배다시피 되었다. 이런 태도로는 문화전통을 몸에 배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모사하는 일은 따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도 말로는 ‘우리 것이 좋다’하지만 속으로는 그 반대라고 다시 다짐한다고 여겨진다. 이런 잘못된 태도가 집중해서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한국화라고 하는 분야다.
  시장확대를 노려 침략의 마수를 뻗치던 100여년 전 열강들 중에서 바로 이웃인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물론 인종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세력이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 어떠한 폐해를 낳는가에 대하여는 잘 인식되고 있지 않다. 사실 동일문화권의 인근 국가가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로 된 것은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당한 문화전통의 훼손과 왜곡은 말로 못할 정도로 큰 것이다. 해방이 되었다는 반세기전부터라도 이러한 실상을 깨달았어야 했으나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였음도 이제 다시 새삼스레 인식되어야 한다.
  모사라는 행위가 무조건 찬양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은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은 자기 문화나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서나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도 냉철히 따져보면 지독히도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승할 가치가 있는 무엇을 확정한 다음 이를 공부하는 일, 즉 몸에 익히는 일은 제대로 된 재창조의 터전으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하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 나온 김현철의 그림은 이제 비로소 볼만한 것이다. 10년 전 이 길이 아니라고 하여 분연히 길을 바꾸면서 무언가를 되살려야 한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진경산수문화였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제 더 나아가 진경시대라고 하는 시기의 초상화에까지 눈길을 돌려 모사를 거듭하고는 이번 전시에도 모사한 것과 더불어 새로이 창작한 몇 점을 선보여 앞으로 본때 있게 다룰 것임을 밝힌다. 바라건대는 산수에서도 좀 더 근접하여 나무와 풀꽃 그리고 움직이는 생명까지도 세세히 다루게 되었으면 하고, 나아가 마음의 세계까지도 닦은 솜씨로 그려내어서 영역을 심화, 확대하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 이룬 것도 다루면서 아울러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구사하는 글로 된 화제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되었으면 한다. 관람객과 더불어 지켜볼만한 그림의 세계가 바로 김현철의 그림이다.       

최석태(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