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율사 초상(慈雲律師 1911-1992) 136 x 100 비단에 진채  2008

(9회 개인전)
'肖像'- 그 傳神의 세계
한벽원 갤러리
2008.10.15- 10.25

초상(肖像)- 그 전신(傳神)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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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릉(金陵) 김현철은 우리문화의 황금기인 진경시대(숙종에서 정조까지) 내내 그렸던 산수, 풍속, 인물화풍의 계승 발전에 뜻을 두고, 지필묵의 기초수련인 임모(臨摹)는 물론 산천을 답사하고 사생하기를 십 수 년을 보내면서 긴 시간을 탁마해 온 작가이다. 이러한 일관된 그의 노력은 가헌(嘉軒) 최완수 선생의 훈도(訓導)아래 간송미술관 동학(同學)들의 질정(叱正)과 고증, 조언에 힘입은 바 크다.   
 이미 겸재의 진경산수화풍을 방불하게 보여주었던 몇 차례 전시에서 실재 사생을 넘은 전통적 산수에 대한 조형적 해석을 이해하고 “산수에 대한 대가들이 통찰력을 읽어내고 그것을 화폭에 담아 그려내면서 산수라는 장르를 탐색(김유숙)”하였다는 평을 들은 바 있고, 이러한 그의 탐색의 결과 그가 발견한 산수의 독법을 편안하고 차분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진경산수에 대한 김현철식 상상과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진경문화가 보여주었던 빛나는 사실주의 전통의 한 축인 초상전신(肖像傳神)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하여 일찍부터 자료를 모으고 발품을 팔며 단절된 초상화를 복구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중이다. 금릉이 이토록 초상 전신의 세계에 탐독하는 것은 조선의 초상화가 보여주는 회화적 성취와 경지가 진경시대를 전후로 전무후무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중국 초상에서 결코 볼 수 없는 독자적 매력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초상화가 보여주는 절제된 필선, 맑고 은은한 색채, 단아한 인물상은 내면의 기품과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마주대하는 듯 고고한 긴장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초상화는 우리 정서와 문화에 맞게 변화되고 토착화되었으며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할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금릉은 초상화에 대한 임모, 배채(背彩), 재질과 채색재료의 검토를 통해 전통기법을 복구하고 현실에 맞는 새로운 초상을 확립하기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임모를 통하여 원화(原畵)가 갖고 있는 충분한 해석과 그 골법(骨法)을 익히는 것은 물론 물감의 종류와 입자의 크기, 접착상태 등을 관찰해가며 채색을 선정하고 이러한 채색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기 위해 뒤쪽에서 그려내는 배채를 통하여 화면의 맑고 깊은 효과와 질감의 차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배채는 채색의 박락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료가 화견(畵絹)의 양쪽에 접착되어 서로 당겨주는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고, 붓 자국으로 생긴 얼룩이 거의 보이지 않아 채색이 용이하다. 또한 뒷면의 채색이 앞으로 비쳐 나온 상태에서 앞면의 음영과 색감을 보강하기 때문에 은은하고 깊이 있는 발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현철은 이와 같은 전통초상의 장점과 특징을 깊이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인물초상을 전형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을 습득하면서 전통 초상에서 보이는 빛나는 장점들을 현실로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전통초상화에서 발견되는 장점들을 열거해보면 철저한 사실주의적 표현, 화가의 눈에 비치는 그대로를 표현한 정직함, 인물의 성격, 교양, 인품 등 내면적 정신세계를 화면에 구가한다는 점, 몸과 얼굴을 약간 옆으로 튼 모습을 잡아서 자연스럽게 입체성을 살린 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얼굴은 섬세한 붓질로 살결을 따라 묘사하되 배채법을 써서 은은한 피부색을 나타냈으며 몸의 의습선(衣褶線)은 대부분 가늘고 힘찬 철선묘(鐵線描)로 표현하였고, 인물의 묘사에 집중할 뿐 배경을 거의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금릉의 금번 인물초상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나 한편으로 비범한 인물들의 초상이고 정면묘사가 많은 것이 특징적이나 특이하게도 <이원조 선생>像은 우안칠분면(右顔七分面)으로 그려져 있다. 정면초상이 많다는 것은 인물의 골격에 따른 음영과 색감으로 입체적 표현에 대한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금릉이 보인 인물초상을 분석해보면 우선 안면의 살갗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먼저 밑작업은 갈색의 대자(代赭)로 윤곽 및 기본 음영을 표현하였다. 입체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바탕위에 세부적으로 얼굴 전체의 깊은 주름과 땀구멍, 작은 기미 등 노화된 피부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는데 안면묘사에서 보이는 살갗표현(肉理紋)은 대상의 사실적인 피부상태에 충실하였고 지나치게 과도한 표현은 절제하고 있다. 이는 육리문의 표현이 과도하여 생기를 잃고 도식화된 19-20세기 초상화의 예를 염두에 둔 것으로 조선 초상화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포착한 것이라 생각된다.
 모발은 인물의 성격과 모습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로 가는 붓으로 많은 붓질을 가미하여 단정하지만 살아있는 듯 묘사하였고 면도를 하고난 뒤의 까실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공들여 표현하였다. 눈썹의 형태와 생김은 피사인물의 특징과 개성을 잘 보여주기 위해 터럭 하나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인물의 정신경계를 가장 포착할 수 있는 눈동자를 표현함에 있어 각막의 외곽선을 진하게 하고 동공 주변으로 갈수록 옅게 하여 상대적으로 동공을 부각시키는 기법을 차용하였는데 대체로 조선후기 인물초상에서 나온 기법과 동일하다. 눈이 동공 주위의 밝아진 부분에 마치 불화나 어진(御眞)의 안광 표현에 사용된 금박 배채처럼 미약하나 강렬한 황기(黃氣)를 가미하였다.
 의복의 표현에서도 대체로 검박(儉朴)하고 절제된 결 표현으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대상 인물의 개성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약간 풍후하게 그려졌다는 인상이다. <이원조>像에서는 단아한 선비의 풍채를 명징한 필선으로 묘사하였고 <박택영>, <임옥임>像에서는 질박하고 검소함을 굵고 호방한 필선으로 내리 그었으며 <김금덕>, <최윤임>像에서는 방정(方正)하고 은은한 덕을 담묵의 필선으로 간략하게 묘사하였고, <최송설당>像에서는 은은하고 섬세한 비단의 문양, 의습(衣褶)의 유려한 곡선을 통해 엄숙하면서도 정정한 기상을 나타내었다.
 금릉의 초상은 반신상으로 손의 묘사가 없는 것이 많은데 손의 묘사를 통하여 노인의 주름지고 노쇠한 손을 통한 대상인물의 진솔한 느낌을 함께 살릴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기록의 엄정함으로서의 초상의 사실성이 현실적인 고려 하에서 표현의 미추(美醜)를 조정해야 하는 점이 초상 인물화로서의 장점과 특징에 부담이 되고 있다. 한 획, 터럭 하나라도 정세하게 그려내고 병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사진(寫眞)의 전통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이어지고 계발되어야하는지는 현실의 리얼리티에 대한 고려 속에서 작가에게 남겨져 있다.
 <최완수 선생>眞의 경우 인물의 눈을 통한 내면표현능력에서 눈동자를 정채(精彩)있게 표현하여 명석하고 오묘한 생각을 가진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면서 짧은 머리의 두상을 가는 붓으로 표현하고 부드러운 듯 굳게 다문 입술 표현에서 인물의 기질과 총기를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 진중하면서도 안정된 미감을 안면에 보인 반면 옷자락의 어깨선이 지나치게 크고 풍채가 과장되어 인체구조 및 투시도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묘사에 문제점이 제기된다. 시각적인 의미에서 가헌선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대상인물에 대한 엄정한 작가적 관찰이 요구된다.
<자운대율사>像은 계정일치(戒淨一致)를 통해 선정불이(禪淨不二)를 보여주었던 자운대율사의 엄숙한 풍모를 전신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적당히 크고 길쭉한 타원형으로 온화한 모습이나 날카로운 눈매와 확고부동한 의지를 얼굴에 품고 있어 비범한 기상과 품격을 느끼게 한다. 건장한 어깨선을 중심으로 좌상의 골격은  장중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노란색 가사를 두르고 세밀한 문양을 통해 고매함을 드러내면서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 번잡하지 않게 의습의 곡선을 표현하였다.

 금릉 김현철은 조선초상화의 미감을 살려 그 전신(傳神)의 세계를 온전히 전하려고 고금의 전철을 밟고 피사인물의 신정(神精)과 통하기 위해 부단히 현실속의 인물들을 만나고 초상전신(肖像傳神)을 조정 보완하고 있다.


 류 철 하(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