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혜원대선사진영(杲山慧元大禪師眞影) 제작기

불교에서는 대승과 소승을 막론하고 삼보를 가장 중요시한다. 불교도의 세 가지 근본 귀의처인 삼보(三寶)는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말한다. 그 중 승보는 석가 이후 수행을 행하는 승려를 지칭한다. 선종중심의 우리나라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고승은 후대의 스승으로 분향 예배의 대상이 된다. 또한 불가에서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진영(眞影)으로 영정을 제작하는 전통이 있다.

지난 시간, 조선시대 초상화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살피며 화도(畫道) 수련을 할 즈음, 입산 출가한 지 60년이 지난 한 스님의 회고록 ‘지리산의 무쇠소’를 읽었다. 진(眞), 영(影), 상(像), 진영(眞影), 영정(影幀), 사진(寫眞) 등으로 일컬어지는 초상화는 사람의 외모와 함께 그 정신을 그려내는 그림이다. 특히 우리 전통초상화에서는 겉모습을 통해 내면의 정신성을 표출하는 전신(傳神)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때 자신의 지난 일과 경험을 돌이켜 보며 쓴 회고록은 과거 행적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통해 글쓴이의 내면세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어 초상화 제작을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당시 고산스님 회고록 ‘지리산의 무쇠소’와의 인연은 초상화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2021년 11월, 고산문화재단에서 고산스님입적 1주기를 앞두고 화가에게 영정제작을 의뢰해 왔다. 

고산 혜원(1933~2021)스님은 89세인 법랍 73세로 하동 쌍계사에서 입적하셨다. 13세에 입산 후 수행자로써 포교와 중생교화로 많은 족적을 남기신 스님은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법륜사, 조계사, 은혜사, 쌍계사 등 여러 사찰에서의 맡은 소임 뿐 아니라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 통영 연화사 창건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늘 대중과 함께 하셨다. 이렇듯 오랜 포교활동과 수행 정진에서 비롯된 깨달음의 지혜는곧 수많은 후학과 불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이에 화가는 고산스님 진영을 제작하고자 스님의 지난 자취를 따라 생전의 거처와 유품을 찾아 그 수행의 여정을 찬찬히 헤아렸다.

스님의 진영은 전신정면의자상(全身正面椅子像)의 형식을 취했다. 비록 의자는 장삼과 가사에 가려 보이지않지만 오른손에는 불자(拂子)를 잡고 왼손에는 염주를 지닌 채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이다. 얼굴의 형상인 상호(相好)는 처음에 장년기의 모습으로 그렸으나 이후 감수 과정을 거쳐 노년기 얼굴로 바꾸어온화한 모습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무엇보다 얼굴에서 그 정신성이 드러나야 하므로 섬세한 필선과 미묘한안색으로 표정에 생동감을 주었으며 특히 눈빛에서 스님의 정신세계가 잘 표출되도록 힘썼다. 수묵으로 기본 형태인 초를 잡은 후 배채(背彩)로 화면 뒷면에 색을 올려 진영의 기본 색상을 정했다. 이어 화면 정면에서 구체적이며 보다 세밀한 묘사로 진영을 점차 완성해 갔다. 법의인 주홍색 가사(袈裟)는 화면 뒷면에 금박을 붙여 성긴 비단 올 사이로 금빛이 드문드문 비치게 하여 마치 깨달음의 지혜가 반짝이듯 하게 했다. 스님의 수행과 정진이 그러했듯 전체적 용모와 자세 또한 반듯하며 균형 잡힌 모습으로 진영을 완성했다.

초상화는 화가의 능력만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아니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인물의 삶이 그러해야하고무엇보다 초상을 의뢰하는 이의 극진한 마음이 다 했을 때 비로소 좋은 초상화를 얻을 수 있다. 스승인 고산혜원대선사 진영이 완성되기까지 깊은 신뢰로 1년 남짓 긴 시간동안 기다려 준 고산문화재단 임영담 이사장님의 간절한 염원이 있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고산혜원대선사진영 杲山慧元大禪師眞影>, 2023, 비단에 진채, 140×94cm, 쌍계사 영모전 소장>

2023.3.2.(음2.11)

금릉 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