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비 내리는 집... 綠雨堂
해남 덕음산 자락 연동마을에 고택 녹우당이 있다. 15세기 후반 어초은 윤효정이 강진에서 처가가 있는 해남으로 거처를 옮겨 이곳 연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해남윤씨 어초은파 종택인 녹우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윤효정 처가의 넉넉한 경제적 기반과 세 아들의 연이은 문과 급제는 장차 해남윤씨가를 명문사족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수 백 년 가업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재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숱한 명문 종가 중에서도 녹우당은 특히 학문과 문화예술의 산실로 오늘날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해남윤씨 어초은파 4대조 고산 윤선도를 비롯해 국보 제244호로 지정된 <윤두서 자화상>을 그린 7대조 공재 윤두서, 그리고 그의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 등 3대에 걸친 화가들이 있었으며 공재의 외손자 다산 정약용 같은 대학자도 녹우당과 큰 인연이 있었기에 대성할 수 있었다.
2014년 공재 서거 300주년에 즈음해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그의 기념전이 대대적으로 열렸다. 그곳에서 <윤두서 자화상>을 다시 보며 공재는 왜 초본 형식의 자화상을 그린 후 이어서 정본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새삼 들었다. 이후 2016년에 이르러 종이에 그려진 ‘윤두서 자화상’을 초본 삼아 비단에 정본의 <윤두서 초상화>를 제작해 발표한 바 있다.
이제 곧 '2018 전남수묵비엔날레' 가 목포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그 행사 중 전남지역의 종가를 회화작품으로 표현한 “종가의 향기”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목포연안여객터미널 갤러리' 에서 열릴 예정이다. 선정된 전남지역 10곳의 종가를 10명의 작가가 한 종가씩 맡아 진행할 터, 일전 '윤두서 초상화' 를 제작한 인연으로 녹우당 종가를 맡게 되었다.
작품 제작에 앞서 몇 차례 녹우당 고택에 대한 답사가 있었다. 현 18대 종손 윤형식 선생은 여느 때와 달리 녹우당 곳곳의 문을 열어 보여 주며 녹우당의 지난 이야기들을 자세히 전해 주었다.
중시조인 윤효정이 이곳 연동에 터를 잡은 후 600여 년 지난 녹우당은 그간의 긴 세월만큼 그 모습도 삶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왔다. 근래에는 사랑채 담장과 행랑채 등을 대대적으로 수리 보수했으며 사랑채 마당도 예전과 달리 화강암의 박석을 깔았고 뒷마당으로 통하는 중문도 다시 설치했다. 그러나 녹우당의 상징적인 공간이라할 수 있는 사랑채는 옛 그대로였다. 일찍이 스승이었던 고산 윤선도를 위해 효종 임금이 수원에 지어 하사한 집을 윤선도 말년 쯤에 이를 해체해 해남으로 옮겨 지은 차양이 있는 사랑채이다. 이를 비롯해 윤효정이 세 아들의 진사시 합격을 기념하여 심었다는 고택 입구의 은행나무와 주변의 고목들은 녹우당의 지난 세월을 묵묵히 대변하는 곳으로써 <녹우당 전경도>를 그리는데 주요 대상 처로 삼았다.
또한 녹우당 고택은 대를 이어 그 안에서 함께 삶을 꾸려왔을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다. 이에 종가의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평생 녹우당을 지키며 선조들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선양하고 있는 현 종손의 초상화를 그려 봄도 이번 전시회에 큰 의미가 있으리라 여겼다.
85세인 윤형식 선생의 모습에서 300여 년 전 선생의 11대 선조 공재 윤두서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속의 40대 모습이 겹쳐 보여 초상화 제작 중 큰 전율을 느끼기도 했었다.
2018.08
금릉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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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전남수묵비엔날레
전통과 가통이 계승되는 전남종가전
2018.09.01 - 2018.10.31
목포국제여객선터미널 갤러리
(참여작가)
김억, 김은숙, 김현철, 박득규, 박성우, 박태준, 신태수, 안석준, 우용민, 이지연, 정종미, 하성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