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다

금릉 김현철 . 화가 

  숙성(熟成)이란 식품이 완성에 이르는 한 과정이다. 곧 제조과정에 있어 효소나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된 후 그 식품에 어울리는 성질의 맛과 빛깔, 향 등을 갖추게 하는 총체적인 조화 현상을 말한다. 그 정점에 이르기 전의 상태는 미숙(未熟)이요, 지나치면 또한 과숙(過熟)이 된다. 작품의 제작과정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경화풍의 산수 및 인물초상을 그려 온 나는 대개 현장 답사, 스케치, 자료조사 등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한다. 작가마다의 성향에 따라 그림을 완성하는 방법에 있어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옛 그림을 연구하며 익혀 온 내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어느 듯 자연스런 작화 방법이 되었다. 이렇듯 뜸을 들여 제작한 그림들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미숙하거나 과숙하여...

  지난 해 여름, 제주도에 있는 한 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였다. 120여 일 동안 그곳에 머물며 제주의 진경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머무는 내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주의 참 모습, 진경(眞景)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그렸다.
1년이 지났다. 제주를 떠난 후 아직까지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제주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어떻게 숙성되었을까.그 곳에서 직접 마주할 때의 생경한 풍광도, 관광사진 속의 구태의연한 풍경도 아닌 진정 내게 깊게 인상 지워져 점차 숙성된 진경은... 다시 그렸다.

(아트인컬쳐 2012년 8월호, '오후의 아틀리에' 게재 p4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