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106 X 212 cm 비단에 수묵진채 2007

임모(臨摸)는 그림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리는 미술기법이다. 중국에서 비롯된 임모는 그림을 배울 때 규범이 되는 그림을 모사해 그 법식을 완전히 소화해낸 뒤 창작의 길로 나갈 수 있다고 믿어온 수련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방 후 대학교육에서 임모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비록 임모가 독창성을 담보할 순 없지만 한국화의 정체성을 찾는데 더 없는 수련 과정이기도 하다. 중견 한국화가 김현철(50·간송미술관 연구원)은 고단하지만 자신을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는 임모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물감을 흘리고 뿌렸던 실험작업을 펼쳤던 그가 10년이 지나도록 임모에 천착한 까닭은 서예에서 말하는 일획의 도를 터득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21일까지 안양 롯데화랑에서 열리는 8번째 개인전 ‘옛것으로부터 새로움을…’에는 임모와 실제 답사의 경험을 살린 사생작품 35점이 선보인다. 작품은 크게 산수, 인물, 궁궐 등으로 나뉜다. 산수는 조선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와 중국화가 곽희, 심주를 모사한 임화와 전통화법을 따른 창작 산수화 등이 선보인다. 인물은 전통 인물화의 화법을 바탕으로 인물마다 다른 기법을 사용했다. 송설당 초상과 김금덕 선생 유상, 일가 김용기 장로 초상 등은 인물의 외모 재현은 물론 성품과 내면까지도 표현한 듯하다. 이번에 선보인 경복궁은 가로 212㎝의 대작으로 수묵진채로 표현됐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창할 때의 도면을 토대로 복원됐다. 이 작품은 한 왕조의 위엄이 서려 있다. 인왕산과 자욱한 안개가 궁궐을 감싸며 한치의 빈틈도 느껴지지 않는 치밀함이 내재돼 있다. 이승미 북촌미술관 부관장은 “작가는 고답적이고 보수적으로 사람으로선 한없이 너그러워 보이지만 어떤 부분에선 느슨한 타협이라곤 없는 대쪽 같은 선비가 더 어울린다”며 “다소 과장되고 허풍이 심한 상업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느리고 천천히 자신의 호흡으로 본질을 찾아가는 작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분명 복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