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

(김형근)

눈을 감으면
그리운 이들
다시 보고 싶은 이들
눈 앞에 아른 거리고
눈을 뜨면
무겁게 화창한 여름 날
눈을 감으면
곁을 떠난 이들
이제는 볼 수 없는 이들
눈 앞에 아른거리고
눈을 뜨면
무겁게 화창한 여름 날
눈을 감으면
창 밖에서 들리는 대나무 소리
왠일인지 오늘은 눈을 떠도 들리는 대나무 소리
눈 앞에 펼쳐진 자유로운 하얀 겨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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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들 형근이의 개학날이다. 방학내내 학원다니느라 정작 학교 방학숙제는 게을리 했나보다. 지난 밤 늦도록 아니 새벽이 밝아오도록 이것 저것 하느라 부산했다. 난 모른 채 그냥 잤다. 이른 아침. 어수선한 아들 방에 미쳐 챙겨두지 못한 시화(詩畵) 과제물이 눈에 띄였다. 들여다 보니 '여름 날' 이란 시였다.
 .......
창 밖에는 지난 여름까지 무성한 대나무 숲이 있었다 김천 떠나 올 때 화분에 심어 온 오죽(烏竹)이었다. 작은 분에 담아 이리저리 오래도록 함께 한 것을 아들이 태어 날 즈음 창문 너머 집 밖에 내다 심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손가락 같았던 대나무들도 어린 아이 팔뚝만하여 어느 듯 대숲을 이루었다. 비 오면 댓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바람 불면 댓잎을 스쳐가는 댓바람 소리.. 아무도 모르게 아들은 이를 즐기며 위안받고 있었나 보다.
지금 창 밖에는 빈 하늘만 가득하다.
어느 날 새벽, 스산한 댓잎소리와 함께 모두 잘려 나갔다. 미친 톱질 소리...
잠자리에서 아들은 듣고 있었을까 ....
부디 텅 빈 형근이의 마음에 푸른 하늘이 가득 들어 오면 좋겠다. 푸른 하늘이...

2006.08.23
금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