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개인전 비평 - 경기문화재단 모니터링 결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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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水, 風, 景 - 그리지 않은 그림, 금릉김현철展
2009. 10.7- 10.13 
공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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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 水, 風, 景

이 번 《山, 水, 風 景》展의 전시명은 1996년에서 2009년까지 금릉 김현철 작품의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도 흉내 낼 수 없는 형상의 묘사가 충분한 그의 손은 오히려 산수풍경 속의 여백과 자유로운 순수한 사색의 공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다. 그것은 금릉 스스로가 직접 산천에 나가 체험하고 사생한 눈앞의 자연을 보고 또 보며 그 너머의 의미로 작품을 완성해 나간 과정의 함축일 것이다.

- 여백. 순수한 사색의 공간

김현철은 시대를 넘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것은 작품에서 오히려 한없는 자유를 부여하여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게 하는 사색의 근원 같다. 그에게 여백은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남겨진 공간이다.

〈해인사(海印寺)〉(작품1)는 단번에 그의 아득하면서도 풍부한 여백의 의미를 알게 하는 작품이다. 가야산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담묵에 둘러싸였음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해인사를 강조하려 함인지 알 수 없으나 이런 의문을 갖는 시간이 그림을 읽는 즐거움일 것이다. 보이는 우측 해인사 전경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가야산을 엷은 먹으로 선염(渲染)하고, 좌측은 보다 짙은 농묵(濃墨)으로 힘 있으면서도 과감하게 산등선을 생략하였다. 과감한 구도는 유쾌하며 마주하고 있는 듯 생생하다.

〈성산 일출봉〉(작품2)은 최근 작품으로 또 한 번 반갑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어 쪽빛의 여백이 되었다. 제주도 하늘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애써 분별하지 않았으며, 성산 일출봉을 부감시(俯瞰視)로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이 시점은 외지인의 마음 길 일지언정 제주도스러움에 순간 오관(五官)이 함께 움직인다. 그 중 쪽빛 바다의 적막을 무너뜨리는 궁화(宮花) 내지 민화(民畵)에서 등장하는 하얗게 일렁이는 물결이 주는 맛이 일품이다. 적막할 수 있고 형체가 없는 듯한 바다에 하늘과 땅이 나란히 존재함을 그 신명난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2005년 〈화성전도〉, 2006년 〈불국서색〉, 2007년 〈경복궁〉과 같은 2-3m의 대작 이후 최근의 궁궐시리즈는 건축물 하나에 집중하여 역사적 무게감에 미적 관점으로 사실주의적 이상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 작품이 〈경복궁 근정전(景福宮勤政殿)〉(작품3)이다. 첫인상은 근정전 건물 자체만 보이지만, 차차 좌측 담묵의 인왕산과 근정전을 둘러싼 회랑(回廊)과 월대(月臺)·기단(基壇) 그리고 그 주변의 경계도 없어져 버린 하늘과 역사적 발자취가 남았을 땅을 서성이게 한다. 금릉의 자유로운 진채와 담채의 사용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적절한 표현을 위한 선택으로, 그림을 환하게 하기도 하고 아득하고도 깊은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김현철은 답보상태의 한국화단에 새로운 미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작품들에서 특히 그러한 변화가 뚜렷한데, 감상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그려 낸 작품의 시점을 배워가게 된다. 그만큼 설득력 있게 보는 이를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가 제주도 성산 일출봉을 쪽빛 바다 위에서 하나하나 읽어나가게 하고, 담묵(淡墨)의 산에 반 이상 가려져 있는 해인사를 넉넉한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그의 궁궐 그림 시리즈는 궁중기록화(宮中記錄畵)적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중심 주제로 부각시키며 재해석하고 있다. 
완성도 높았던 2007년 전시 이후 그의 행보는 놀랄 만큼 자유로워지고 있다. 완벽주의적인 금릉이 작품에서 점점 거침없어지기에 그가 그린 그리지 않은 그림은 얽매이지 않으려는 순수한 노력 같다. 김현철이 그린 사색의 공간을 ‘여백의 미’라는 오랜 관습적인 수식어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재정립한 용기 있는 무(無)의 형상화는 정신이 무한을 향하듯 개념을 뛰어넘어 작품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이다.

박은주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