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97x162cm  아사천에 수묵진채  2012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이다. 창덕궁은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조선의 궁궐들 중 하나이다. 경복궁은 넓고 비교적 평평한 곳에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창덕궁보다 크고 위용이 있는 반면에 창덕궁은 주위의 산세와 지형을 살려 골과 마루가 있는 우리나라 지형을 닮아 한국인의 정감이 묻어나는 곳이다. 궁궐 뒤편 후원은 울창한 숲속에서 정자와 누각이 작은 연못과 함께 굽이굽이 돌 때마다 나타나면서 예쁜 꽃들과 새소리가 어우러진 곳이다. 조선의 여러 왕들도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더 사랑해 침식과 정무 공간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궁궐은 본질적으로 많은 고뇌와 결정이 따르는 곳이다. 창덕궁도 조선 왕조 500년의 영광과, 1910년의 일본의 병합과 같은 오욕을 간직한 곳이다. 결정이 어려울수록 결정하는 이는 외로워진다. 결정을 하기 위하여 고뇌하고 번민하는 시기에는 주위의 아름다운 산세와 정감 넘치는 자연을 잊어버릴 만큼... 인정전은 조선의 다른 전각보다도 많은 결단의 순간을 겪은 곳이다. 그래서 인정전은 외롭고 쓸쓸하게 서 있다. 또한 임금의 결정은 위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정전은 외롭고 단순하면서도 당당하다. 인정전 마당에 펼쳐진 파란 색은 바다를 연상시킨다. 바닷물 아래에 수많은 생명의 꿈틀거림 속에 긴장감 넘치는 표면의 고요함이 고뇌의 순간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개 숙이고 고뇌하는 조선의 왕의 얼굴이 인정전의 모습과 닮아 있다.

양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