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미술에서는 소재나 재료를 얼마만큼 숙련되게 다루며 이를 형식적으로 완성시키는가 보다는 그것이 갖는 의미, 컨셉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였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더 중요한 이슈로 논해지다보니 특정 매체에 얽매여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방식 보다는 자신의 의도에 적합한 장르를 선택하거나 작업에 따라서 매체가 변화되기도 한다. 회화작업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과거 수묵, 유화기법 등 한정된 재료의 기법에 골몰하며 긴 시간을 연마했던 것과는 달리 혼합매체를 손쉽게 접하고 활용하며 이러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재료나 표현기법에 대해 학습할 시간을 확보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창작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작가 김현철 역시 이러한 시류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졸업 후 3-4년간 전통재료를 활용한 추상작업에 심취하기도 했으나 이내 전통회화에 관한 학습과 더불어 전통산수기법의 임모(臨模)와 사생(寫生)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과거 대가들의 산수를 그대로 모사하면서 다양한 전통의 산수기법을 습득하는 것에서부터 진행되었는데, 이는 과거 동양의 창작과정에 기반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수화에서는 누구의 산수를 모방(倣)한 그림이라는 글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러한 모사과정을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의 스타일을 모사해본다는 것은 기법을 연마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고, 특히 전통 재료인 모필(毛筆)과 수묵의 숙련된 사용은 긴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모사는 중요한 수련 과정이었던 것이다. 작가 김현철의 산수는 이처럼 과거의 방식대로 학습하면서 익혀 온 결과물이다. 그의 사실적인 풍경은 실제 사생과 더불어 산수에 대한 미술사적 연구 및 표현기법 모사를 통한 연습에 기초한다. 그리고 특히 그의 모사 연구는 전통적인 산수에 대한 조형적 해석에 관심을 두어온 듯하다. 나무 한 그루, 근경의 언덕이 아닌 장엄한 원산(遠山)을 주된 소재로 삼는 것도 산수화라는 장르, 산수 전체를 하나의 조형물로 파악하고 이를 철저히 파헤쳐서 재해석 해보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으로 이해된다. 산의 정기, 산의 기세를 드러내는 것, 이에 관한 개인적인 감상을 표출하는 것 보다는 산수에 대한 대가들의 통찰력을 읽어내며 그것을 화폭에 담아 그려내면서 산수라는 장르를 탐색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작가 김현철의 산수는 편안하면서도 하나씩 해독하듯 그 기법들을 살펴보게 하며 이로써 그의 사실적인 풍경이 전통을 재해석한 새로운 버전의 산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의 신작들은 여기에 새로운 방향을 더해가고 있다. 수묵 혹은 채색이 주류를 이루는 산수들은 자신감 넘치고 활달한 필획으로 표현되며 전통의 흔적이 아닌 그것이 체화된 자신의 기법으로 표출되어 독자적인 조형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그것의 특정 장소성이나 과거의 사실적 표현을 넘어서서 그 사실성 보다 조형적 아름다움에 더욱 심취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그가 긴 시간동안 탐색해 온 탐미적 사실주의 경향이 아닐까. 작가 김현철의 산수는 앞으로 그가 욕심껏 그려내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게 보여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전통적, 역사적 표현의식에 기반한 순수 조형적 사실주의는 산수 뿐 아니라 그가 새롭게 시도하는 인물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진행될 것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