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개인전 비평 - 경기문화재단 모니터링 결과 발췌)
'옛 것으로부터 새로움을... 김현철展'
안양롯데화랑
2007.11.15 - 11.21

옛 그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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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옛 그림을 소화하기까지의 시간,
그 전의 또한 10년, 옛 그림에 다가가기까지의 시간.
이렇게 20년이 넘는 작가로서의 시간을 금릉 김현철은 붓끝으로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옛 그림 연구의 시작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을 함께 비교할 수 있었으며, 작품의 선정도 매우 뛰어났다. 전통화법에 대한 작가의 숙련도는 곽희의 ‘조춘도早春圖’와 심주의 ‘여산고도廬山高圖’를 원본과 같은 크기로 임모臨摹한 작품에서 알 수 있다. 숨막힐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작품은 담묵에 세필의 세부묘사까지 놓치지 않고 재현한다. 그러나 그 재현은 단순한 닮음이 아닌 옛 그림에 대한 작가의 다짐과 정신이 담겨있다. 그의 옛 그림의 시작은 다음의 글과 같은 자세가 아니었을까…

"사람이 그림을 배우는 것도 글씨를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략) 어느 한 화가의 畵法을 따라서 오랫동안 익히면 반드시 그와 꼭 닮은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도량이 넓은 大人이나 명석한 達士라면 한 화가에만 얽매이지 않고 반드시 여러 대가의 화법을 함께 취하고 널리 연구함으로써 자신으로 하여금 一家를 이루게 한 후에 비로소 이치를 터득했다고 생각한다. "

윗 글은 ‘산수’를 어떻게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를 미학적 관점에서 이론을 정리한 곽희(11세기)의 『임천고치』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작가는 옛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보아야 하는 지의 첫 단추를 임모에서 찾았으며, 그러한 초심은 10년 후 《경복궁》을 가능하게 하였다. 동양화의 ‘정신’을 강조하지만 담론의 공허함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미술현실에서, 그 대안을 작가는 옛 그림에서 찾았다. 그것은 뒷걸음질이 아닌, 진정한 내적 새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시작이었다.

산수화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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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화가의 직접적 체험 속에서 형상화 된 것이다. 단양팔경인 <옥순봉>과 <사인암>, <도담상봉> 시리즈 중 최근 작품에서 작가는 석채를 맑게 사용하여 밝은 느낌의 산을 표현하였으며, 부드럽고 원숙한 필선미는 뺄 것 없이 돋보인다.
김홍도의 그림에 익숙한 관람객은 먼저 김홍도의 중앙집중식 구도와 주변의 여백, 수면을 연한 청색으로 선염하고 담묵으로 물결을 묘사한 그림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김현철의 그림을 오래 감상하게 만드는 까닭은 그림의 소재는 같으나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옥순봉>의 경우 반 이상을 차지하는 물을 아무 더함이 없는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상단의 옥순봉은 주변의 산세와 함께 전체적 관조가 가능한 먼 시점에서 푸른색 석채를 가해, 화폭에서 1/8정도의 공간을 차지함에도 중심을 차지하는 힘을 갖는다. 그리고 하늘 역시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오랫동안 머물고 상상하며 노닐게 만든다. 이것이 금릉의 그림을 읽는 묘미이며, 즐거움이다.
즉 그는 의도적으로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부분을 취하고 버리거나, 변형시킨다. 자연에 대한 김현철의 이러한 심미사상이 융합된 산수화는 실경을 그렸음에도 실제 자연보다 묘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러한 작가의 노력은 《경복궁》에서도 계속된다. 궁궐 연구가(홍순민)와 전통건축 전문가(손영식)로부터 경복궁 중창시의 도면과 복원에 관한 자료를 구하여 고증자료로 삼고, 자문을 받아 《경복궁》은 회화사적 의미에 앞서 역사적 인식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경복궁》은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어있다. 상단의 인왕산과 북악산이 위치함에도 무겁지 않은 것은 경복궁 주변인 위쪽과 오른쪽 그리고 오른쪽 하단을 자연스런 안개(구름)로 여백과 같은 효과를 주었기 때문이다. 극사실적세필묘사를 보여 주는 건축물은 석채를 사용해 적색과 단청색으로 생기를 띄고, 미점과 담채의 산은 자연스러운 구름으로 이어져 다양한 시선의 이동을 유도한다. 그러한 관람객의 시선의 옮김은 화가의 고민과 노력이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에서 예술적 추체험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 된다. 옛 궁궐도의 형식화된 도안 같은 느낌이 아닌, 오래 전의 그들과 내가 거닐었던 그 공간에서 작가는 지금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산의 시선으로, 전각 옆의 나무의 입장에서, 근정전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기는 관람객의 마음으로...
 
끊어진 초상화의 명맥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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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초상화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라 볼 수 있는 본질적 특성인 정신적 의미의 전달은 표명하지 않아도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대상 인물과의 닮음을 필요로 하지만 화가의 의도적인 변형을 통해 보다 표현력 있게 전달되는 현대 작품에 익숙한 관람객에게 전시장에서의 작품은 작가를 닮아 옛 그림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김현철이 산수화를 그려내기 위해 산의 수많은 인상을 흡수하고 마음에 담아두어 재구성하였듯이, 초상화 역시 대상 인물의 잠재된 특징을 이해한 후 제작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초상화는 화면에 인물의 형상만을 통해 모든 감추어진 특질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전통화법으로 완성도 있게 작업한다는 것은 붓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송설당 초상》이나 《김금덕 선생》등의 작품을 보면 정면관이나 반신상을 하고 있으며, 운염법을 재현하는 등 조선후기의 초상화 전반을 통해 주도적으로 사용되었던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화단에서 끊어진 운염법은 안면에 무수한 붓질을 가하는 것으로 피부의 육리문의 도해라고 할만큼 붓질의 치밀함이 요구된다. 붓질이 여러번 가해진 곳에는 짙은 음영이 깔리게 되고, 볼록한 느낌이 부여되며 붓질이 덜 간 곳에는 오목한 느낌이 감지되게 한다. 김현철은 조선후기 매너리즘적 경향을 보이는 운염법을 대상 인물의 실재감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담아내고자 각각 인물마다 다르게 적용하여 새롭게 완성해 낸다. 눈빛에서, 꼭 다문 입가와 잔주름의 미세한 특징들까지 세부에서조차 밀도 있게 작품을 완성했다. 대상 인물을 모르는 이들 조차도 작품 속 인물의 성품이 전달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옛 그림을 뛰어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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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기에 그림 안에서 제공되는 무한한 장소와 시간적 순간이 아닌 마음이 노닐 수 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릉 김현철의 작품은 그러한 형상을 초월하는 내재적 힘이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시점을 끊임없이 이동하며 재구성한 ‘산수’에서, 한 마디 말이 툭 튀어 나올 거 같은 ‘초상화’에서 화폭이 말하는 진실한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것은 기교가 아닌 완숙한 화법의 정통함과 인간과 자연을 보는 작가의 의식이 하나의 세계로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옛것을 뛰어넘어 다시 새롭게 시작될 것을 예감하게 한다.

박은주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