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유달리 많은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당시는 유교를 실천적 지도 이념으로 표방하였기에 왕이나 부모 등 근본에 보답하려는 보본(報本)관념과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고 숭상하려는 숭현(崇賢)사상에 의해 초상화가 주로 그려졌다. 그 후손과 유림들은 각처에 사당, 영당, 서원 등을 지어 이를 모셨으며 열과 성을 다해 향사(享祀)하였다. 이 때 그려진 초상화는 후손과 유림들에게 조상이나 선현 그 자체였다.

경주김씨 제주종친회는 후손들의 숭조(崇祖)사상을 드높이고자 제주입도 시조인 김검룡 영정을 제작 봉안하려 종친들의 중지를 모았다.

훈련원도감대장(訓練院都監大將) 김검룡(金儉龍 1356~?)은 조선개국 일등공신 의정부 좌찬성 익화군 시호 충민공 휘 인찬의 셋째 아들이다. 그의 제주 입도 사연은 분명치 않으며 지석(誌石) 또한 그 지문이 마멸되어 당시의 관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인조 때 공의 7세손인 만일공이 공신이 되어 숭정대부에 오르자 입도시조인 공에게 훈련원도감대장이 추증(追贈)된 것으로 여겨진다.

영정(影幀)은 진영(眞影). 진(眞), 영(影), 상(像), 사진(寫眞), 초상(肖像) 등과 같은 말로 모두 사람의 외모와 함께 그 정신을 그려 낸 그림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영정은 생시에 그리는 것과 사후에 그리는 것의 과정이 서로 다른데 사후에 그리는 추사(追寫)는 그 대상의 형체를 직접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금번 김검룡 영정을 제작함에 있어 그 외모는 이미 제작된 익화군과 만일공 영정에 나타난 용모를 기준으로 하여 그렸다. 또한 종친회 임원들의 사진 속 용모의 특징도 함께 살펴, 둥근 얼굴형에 짙은 눈썹, 비교적 두툼한 코 등 외형적 특징을 부각해 문무(文武)를 겸한 공의 인품이 한껏 드러나도록 했다.

이미 제작된 정면전신교의좌상인 익화군 영정과 정면흉상인 만일공 영정의 표현기법은 이른바 서양화법에 기초한 명암법에 의해 그려졌다. 이제 제작할 김검룡 영정은 그의 생존시기인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초상화에서 주로 보이는 양식과 화법을 응용한 전통초상화의 특장을 살려 그림으로써 진영 제작에 그 의미를 더 하고자 했다.

이에 신숙주 초상, 장말손 초상, 유홍 초상, 손소 초상 등 공의 생존연대와 비교적 가까운 시대의 인물들의 초상화를 참고했으며 좌안칠분면 전신교의좌상의 공수자세를 취하도록 포치했다. 오사모, 흉배, 삽금대, 청색 단령, 붉은 내공, 녹색 첩이, 흑피혜, 검은 교의, 족좌대 등은 당시와 같은 채색안료인 석채(광물성 안료)를 사용해 비단 위에 그렸다. 특히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품계에 따라 가슴과 등에 부착한 흉배는 공이 당상관의 무관으로 사후 추증(追贈)되었기에 그 가슴에 두 마리의 범을 금실로 직조한 듯 금분을 사용해 화려하게 표현했다.

2016 병신(丙申)년은 김공의 탄신 66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이에 공을 추모하는 후손들의 염원으로 그의 영정이 이렇듯 제작되어 봉안식을 갖게 되었음은 그동안 우리 그림을 연구하고 전통초상화의 맥을 잇고자 한 화가에게도 뜻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