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 김현철의 ‘비운 풍경’ 보기 - 도병훈 (facebook / 2017. 06.26)


서울의 강남에 위치한 세레스 홈이란 곳에서 금릉 김현철 개인전을 보았다. 전시장은 강남 대로변에 있는 가구 매장이면서 작품 전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금릉 김현철은 조선시대 전통 기법으로 그리는 초상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2011년 이후 그의 제주 체류이후 풍경 그림은 전통회화에 대한 천착과 ‘창신(創新)’ 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그가 그린 풍경에는 기법적·조형적 측면에서 상이한 전통화풍의 융합이 발견된다. 하나는 궁궐도와 같은 북화풍의 궁중기록화, 다른 한 어법은 겸재 정선이 완성한 진경산수(眞景山水)이다.
궁중기록화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화성능행도》나 각종 의궤 그림에서도 잘 드러나듯, 그림의 목적에 부응하기 위한 특성상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구성력과 공력이 필요한 그림이며, 화려한 진채(眞彩)를 구사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정선의 진경산수는 <청풍계도>, <박연폭포도> <인왕제색도> 등에서 잘 드러나듯, 무엇보다 같은 대상의 풍경을 그릴 때마다 다른 버전으로 재구성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순간의 감흥을 한껏 표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흥취를 표현한 것이다.

금릉의 그림에 보이는 북화적 요소는 대상과 여백을 배치하고 나누는 주도면밀한 구성력과 바다 전체를 거의 같은 색조로 처리한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겸재 그림의 특성은 바위 절벽의 수직준이나 수목을 그리는 필치에서 두드러진다. 겸재의 생애 중 청하 현감 시절이 그의 그림의 큰 전환기가 되는데, 이 시기의 그림인 <내연삼용추도>(국립중앙박물관과 리움 소장본이 있음)에서 잘 알 수 있다. 이후 겸재는 골기가 있으면서도 거침없는 필선묘로 수직준(垂直皴)을 즐겨 구사하는데, 특히 <쌍계입암도>라든가, 겸재 만년기에 그린 <만폭동도(서울대박물관 소장)>, <총석정도>의 총석, <구담도(고대박물관 소장)>에 이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난다.
또한 겸재는 이처럼 리듬과 골기가 넘치는 필력과 대비를 이루는 먼 산은 남화적인 담묵으로 구사했다. 이러한 그림의 예로는 양천 현령 시절에 그린 《경교명승첩》 중 〈공암층탑〉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바다가 전경을 이루는 금릉의 산수화는 궁궐도와도 겸재와도 다른 조형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는 <해남도>와 같은, 자로 그은 듯 수평선이 가로로 긴 화면을 양분하는 그림들에서 특히 그렇다. 금릉이 바다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제주에서 4개월간 체류하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그가 그린 바다색은 작가가 실제로 체험한 해가 뜨기 전 여명의 색처럼 깊은 청색의 느낌을 준다.

금릉의 그림에서 빈 여백은 <해남도>와 같은 경우, 마포로 만든 천(*과거에는 ‘아사천’이라 했으나 지금은 순화어로 ‘삼베천’이라 함)의 까슬까슬한 질감이 청색과 대비되어 촉감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명주(비단)보다는 올이 굵은 전통적인 삼베천과도 유사한 느낌이다. 작가는 전통작가들이 삼배에 그리듯, 필력을 드러내고, 바다 부분은 마포로 된 천 바탕에 아교를 칠하고 수 십 번 물감을 올리는 방식으로 물감을 스며들게 해서 더없이 청정한 기운이 느껴지는 바다를 구현한 것이다. 바다의 색채 구사는 현대회화에서 즐겨 쓰이는 아크릴 물감이지만 북화풍의 쪽빛 진채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바다를 이루는 쪽빛의 세계는 절제된 표현으로 은은하면서도 관조적인 화면으로 다가온다.

그의 그림의 두드러진 특색인 절제된 화면 구성력이란 전통 화론 용어로는 ‘경영위치’에 해당한다. 대상을 일정하게 배치하는 구도에 해당되기도 하지만 대상과 대상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밀도를 지칭할 수도 있다. 금릉의 치밀한 구성력은 특히 섬과 여백 공간을 이루는 하늘을 여백으로 남기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그의 화면 구성은 다채롭다기 보다 미니멀 아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북화적 요소와 남화적 요소의 대비에서도 그의 그림의 구성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북화적 색채 감각과 남화적 운필이 대비되면서 엄격성과 유연성이 서로 직조되면서 독특한 미감을 구현해내었다는 것이다.

금릉의 ‘비운 풍경’ 그림들은 우리의 기후 풍토에 맞는 미감과 전통회화의 특색이 요체를 이룬다. 특히 맑은 먹빛으로 바위나 경물을 묘사하는 담백하면서도 힘찬 필치는 겸재와 단원 중 특히 겸재의 그림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그러면서도 전통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회화적 성취를 보여준다. 우리의 근현대는 훌륭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수많은 선배 작가들이 있으며,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도 금릉과 같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걷는 작가들이 있다. 아무리 작품이 좋고 의미 있어도 그것의 조형적 특질을 언어화하지 못한다면 그 진가는 드러나지 않는다. 향후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조형적 특성이나 감성을 유도하는 요인들이 더욱 섬세한 언어로 공유되었으면 한다.

PS : 사전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마침 전시장에 나와 있던 작가를 만나 그림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작가도 실로 오랜만에 전시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금릉의 그림 세계에 대해서는 책자나 영상매체에 소개된 그림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작가와 그림은 이 전시장에서 처음 대면했다. 이처럼 초면임에도 작가와의 몇 시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오랫동안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겸재 정선이나 단원의 그림을 공부했던 공통점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친근감을 느꼈다.
그날 대화 중 인상적인 한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겸재와 김홍도가 그린 곳으로 울진에 위치한 성류굴을 보러 갔었는데, 현장에서는 김홍도의 그림이, 되돌아 와서 보면 겸재가 맞더라.’ ‘그림을 그리다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언제나 겸재의 화첩을 펼쳐 보면 답이 있었다.’
(*아래 작품들은 전시장에서 본 몇 점의 작가 그림과 그 부분임)

도병훈(미술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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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풍경
금릉 김현철 개인전

2017.06.05~06.30
세레스홈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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