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과 푸른 색조로 스며 든 시공간적 체험 - 도병훈 (facebook / 2019. 08. 21)

수묵과 푸른 색조로 스며 든 시공간적 체험

명료한 듯하면서도 흐트러진 필치들과 대비를 이루는, 시공(時空)을 달리하여 스며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색조... 금릉 김현철 작가의 개인전(아트레온갤러리)에서 본 장면이다. 특히 푸른 색조는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의 색이기도 하지만, 수평선 너머 푸른 바다나 아득히 푸른 하늘처럼 끝내 닿을 수 없는 색이기도 해서 어떤 그리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칠하거나 스며든 물감 자국이 있거나, 불과 몇 번의 검은 먹 선을 그은 것에 지나지 않은 작은 화폭들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실제 풍경보다 더욱 감흥을 자아내는 촉매제 역할을 할까?
사실 실경을 그린 산수화나 풍경화는 실제 자연을 대상으로 하지만 얼마나 그럴듯하게 재현했는가의 여부로 예술적 성취를 재단하는 영역은 아니다. 표암 강세황이 담졸(澹拙) 강희언의 ‘인왕산도’에 쓴 화찬(畵讚)에서, “진경(眞景)을 그리는 자는 늘 지도와 같을까 걱정하는데 이 그림은 매우 핍진(逼眞)하면서도 또한 화가의 여러 법식도 잃지 않았다.(寫眞景者 每患似乎地圖 而此幅旣得十分逼眞 且不失畵家諸法.)”라고 쓴 것도 이런 맥락에서 그 참뜻을 탐색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다루고, 물성적 요소가 두드러져도 그 이전에 그리거나 표현하는 자의 내적 투사라는 특성이야말로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남긴 현생인류 선조들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예술적 성취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하게 한다.
우리 옛 그림이든, 근현대 서양회화든,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논의되는 작품들을 보면, 무엇보다 대상 및 세계에 대한 시지각 및 자기표현에 대한 철학적(미학적) 고민과 함께 표현재료에 대한 치열하고도 섬세한 접근 및 극복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특질이 여타의 일반적 그림과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김현철 작가는 오래전부터 전통회화, 그중에서도 ‘겸재’와 ‘단원’을 바탕으로 ‘창신(創新)’을 시도해왔다. - 이는 근원적으로 종병(宗炳)이 말한 ‘창신(暢神)’에도 그 연원이 닿는다. -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겸재의 필력과 단원의 맑고 운치 있는 먹빛도 발견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시공간적 체험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작가의 간결한 필치와 함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푸른 바다를 모티브로 한 수평선 아래의 푸른색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얼핏 보면 캔버스 바탕인 아사 천에 푸른색을 일률적으로 칠한 듯하지만 상하 좌우가 다른 층 차의 스며듦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공간은 피상적 바다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푸른 바다색은 새벽녘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면 바닷물의 굴절과 기포가 빛의 산란을 유도해 푸른빛을 띤 바로 그 색을 연상케 하는데, 어느 지점은 바다 속, 어느 지점은 바다 위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한순간, 한 시점의 바다가 아님을 알게 한다.

또한 이번 전시회 작품 중 대작인 ‘청량제색(淸凉霽色 ;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에도 비 개일 ‘제霽’자가 들어 있다.)’ 의 경우, 화면 전체는 내려다보는 ‘심원(深遠)’의 관점이면서도 청량사를 둘러싼 자연 풍경은 바로 청량사(淸凉寺) 경내에서 올려다 본 작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러니 작가는 - 우리 전통 산수화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듯 - 그림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는 셈이다. 게다가 깊이를 더하는 푸른 색조의 다층적 변조로 그 공간의 무한성은 더욱 심화되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가 하면 ‘녹우당 어초은사당’을 수묵으로만 그린 그림은 감상자의 몫에 따라 그 느낌의 진폭이 매우 다를 수 있어 보이는데, 이런 그림을 더욱 좋아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어떻게 표현하는가라는 문제는 표현자와 감상자가 별개일 수 없으니, 예술적 성취의 본질은 이런 특성과 맞닿아 있다.

모기 날개가 움직이는 소리와 피아노의 고음 건반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도 진동의 차이로 다른 소리가 날 뿐이지만, 이런 물리적 속성을 모르면 양자는 어떤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물론 수학적 음률을 고도로 섬세하게 계산하여 피아노라는 악기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즉 ‘불일불이(不一不二)’이니 그렇다면 무명(無明)에서 벗어난 차원인 ‘제법무아(諸法無我)’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하여튼 구작 및 신작을 아우른 이번 전시 작품들의 화폭은 대부분 빈 공간을 품고 있어 그 공간을 채우고 완성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래서 틈과 넉넉함이 없는 그림들에서 흔히 목도하는 억지춘향식의 강제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고도 차분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감수성으로 작가와 감성에 어느 지점까지는 공명할 수 있는 ‘존재자’일진대, ‘존재’의 떨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도병훈(미술이론가)


짐작_우리는 초승달을 보고도 만월을 그릴 수 있다
금릉 김현철 초대전
2019.08.15~09.14
아트레온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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