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 비우다, 채우다 - 김나리(옆집에 사는 예술가 /2018)

담다, 비우다, 채우다.

0. 시중재에서

대략 5년마다 작업실을 옮겨 다니던 금릉 김현철 작가. 그가 안산의 시내 한복판의 크고 작은 상가들이 정신없이 밀집되어 있는 번화가 한복판에 작업실을 마련한지도 7년이 훌쩍 지났다. 그는 이곳에 시중재(時中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흐르는 시간 가운데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학창시절, 다들 마다하는 동양화가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했을 때부터 그는 단 한 순간도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림이란 무릇 인간의 생동하는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했던 탓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함에 있어서 민족적 기질은 결코 벗어날 수 없기에, 동아시아의 작지만 알밤처럼 단단한 이 나라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기에, 동양화보다 더 적절한 조형적 수단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통(傳統)이란 본디 전하여 흐른다는 의미 일을 되새겨보건대, 지금 여기, 21세기 한반도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의 풍광을 우리네 민족의 정서에 꼭 맞는 화법으로써 화폭에 담아내려는 시도가 이곳 시중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중재에서 그가 주로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산수화와 초상화 두 장르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는데, ‘닮음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은 이 두 장르를 가로지르며 화폭에 생기를 돋우는 윤활제가 되고 있다.   

1. 담다.  

닮음을 궁구하는 김현철 작가의 산수화는 동양의 산수정신를 향해있다. 하나의 풍경에 대해 겸재 정선의 화면과 단원 김홍도의 화면을 나란히 놓고 봤을 때 어느 것이 실제를 더 닮았느냐 묻는다면 이는 결코 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몸소 깨달은 바 있다. 경북 울진 석류굴을 가던 날도 그는 겸재의 석류굴 도판과 단원의 석류굴 도판을 손에 쥐고 있었다. 실제 풍경에 도판을 놓고 보니 겸재의 그림은 전혀 실제와 닮지 않았던 반면, 단원의 그림은 실제 풍경과 꼭 같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석류굴을 되새길 때 작가의 마음에 불쑥불쑥 떠오른 화면은 오히려 겸재의 그림이었다. 하나의 풍경을 화폭에 옮겨냄에 있어서도 인상을 표현했던 겸재, 그리고 사실을 철저히 사생했던 단원이었기에 그 두 거장은 전혀 다른 효과를 자아낸 것이다. 김현철 작가는 이 거장의 시대로부터 훌쩍 시간이 흘러 21세기가 된 덕분에 우리는 이 두 가지 닮음의 전략을 혼성적으로 취함으로써 동시대적 감성을 보다 풍성하게 화폭에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무릇 자연이라 함은 주로 인공에 대비되는 자연스러운 본성을 가리킨다. 자연에는 동물,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포함된다. 자연을 닮게 그리는 모방적 창작 행위의 핵심은 인간과 현실의 관계에 있다.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모방의 출발점은 인간이 자연과 마주하고 자연을 중시하면서 이를 충실히 구현하는 데에 놓여있다. 하지만 현실의 본질로서의 자연을 파고 들 때 비로소 예술로서의 모방행위는 그 빛을 발한다. 단순히 외부 세계를 피동적으로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에 그치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설했듯, 외양을 훑어낸 형식 위에 정신적인 것을 덧댐으로써 보다 본질적인 차원을 추구함으로써 현실을 자유롭게 드러낼 때 모방 행위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구에서도 모방 행위의 창조적 측면을 주시하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는 동양의 산수화에 내포된 창조성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다.가령 중국미학의 마음으로 조화를 본받는다는 의미의 심사조화(心師造化)를 떠올려봄직하다. 이때 조화라 함은 곧 자연을 의미하며, 이는 주로 산수 자연에서 구현된다. 하지만, 이때 본받기의 방식은 모방의 방식보다 적극적인 표현이다. 서구의 풍경화가 풍경을 마주하고 앉아 구도, 투시, 비율 등등과 같은 과학적 기술을 동원하여 사생으로써 산수의 본질을 포착해내려 했다면, 동양의 산수화가 본받으려는 조화, 즉 산수 자연의 본질로서의 우주라는 것은 기실 그 실체가 없기에 우리의 감각으로 포획될 수 있는 차원에 놓여 있지 않다. 물론 동양의 산수화가들도 조화를 본받기 위해서라면 응당 경치를 마주하겠지만 동양의 산수화는 경치를 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찰하는 데에 그 핵심을 둔다는 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꼬불꼬불 얽히고설킨 것들을 모두 마음과 눈에 새겨 두었다.

  -왕미의 <여하언서>에서-

  마음에 잘 담아두었다가, 한참 익은 후에 그린다.

  -동유의 <서이성화후>에서-

 그런즉 화가는 충분한 유람을 통해 한껏 봄으로써 진정한 산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 한 걸음 한걸음 옮기면서 자연의 면면을 살펴보며 산과 강의 진면목이 가슴 속에 역력히 차오를 때 비로소 그것을 우주적 차원에서 그려낼 수 있다. 무릇 우주는 비어있는 것이기에 화가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충분히 유람하며 산수를 차곡차곡 담아내어 우주의 본질을 통찰하고 인식하는 데로 나아간다. 동양미학에서는 이를 내유(內遊)라 일컫는다. 1990년대부터 20년이 넘도록 김현철 작가가 매진한 산수화는 이러한 내유를 중시한 동아시아 산수 정신과 맞닿아있다. 20114개월 정도 제주도에 체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때 비로소 그는 산수 정신의 정수인 내유를 가작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비로소 바다 풍경을 담아내는 산수화 작업을 중심으로 그의 작업은 절정에 이르렀다. 사실, 제주에 도착했던 초반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제주도에 마련된 작업실에 틀어박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유려한 풍광을 등지고 어두컴컴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리는 그림이 과연 진정한 산수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작업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하염없이 거닐며 제주의 풍광의 이모저모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보다 다양한 풍광들이 그의 화면 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백이 많아졌고 필치는 간결해졌지만, 그만큼 풍광은 더 선명해졌다.이렇듯 내유로 시작해 표현의 완결성을 선취하기까지 작가가 꾸준히 모델로 삼은 화풍은 다름 아닌 진경산수였다. 그가 오랫동안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에 관해 꾸준히 이론적 탐구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2016진경이라는 제하에 산수화 작업들은 선보인 사실은 이를 여실히 반증해준다. 잘 알려져 있듯, 진경산수화는 실경산수화로도 불리며, 조선후기 겸재 정선(1676~1759)을 필두로 진짜산수를 그리는 데에 몰두했던 산수화가들의 경향을 이른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겸재 화풍의 외연만을 쫓아간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겸재 정선의 산수 정신을 본받아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데에 골몰했다. 오랜 시간 정선의 산수정신을 탐구하고 진경산수화들을 임모하는 단계를 거쳐, 이제 작가는 부여 낙화암이나 합천 해인사 등과 같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우리네 풍경들을 오늘을 오늘의 눈으로 자기 안에 담아낸다. 그러므로 김현철 작가의 진짜 풍경은 결코 동양화라는 카테고리에 묶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철저하게 동시대적인 그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2. 비우다 

동양의 선대 예술가들이 잡념 없는 마음을 중시한 것은 마음에 잡념이 없을 때 비로소 우주의 본질을 관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함한다. 그런즉 마음을 비우는 것은 만물의 운동 법칙을 이루는 우주의 기를 포착하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 된다. 잡념이 없는 마음으로써 자신을 잊고 세속을 초월한다는 것은 내유로써 만물을 마음에 담아낼 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마음가짐이다. 일상적인 습관과 사유의 굴레를 벗어나 티끌만치도 흐려지지 않은 마음에 만물을 비추어볼 때, 비로소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만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내유를 통해 산수를 담아낸다는 것은 곧 만물에 감정을 이입하여 자신이 대상 속에 들어간 느낌으로써 화폭에 생기를 돋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현철 작가는 이러한 비움의 효과를 화면 속으로 끌어오는 전략을 구사한다. 마음의 비움이 화면의 비움으로 이어졌다. 과감한 수평선을 중심으로 화면은 분할되고 잡다한 묘사가 절제된 빈 화면에는 꼭 필요한 대상들만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제주 시절 이래로 작가는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데에 연연하기보다 화면을 비워내는 데에 집중해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화면을 비워냄으로써 그의 진짜 풍경이 완성되었다. 과감히 비워진 윗면의 하늘 아래 가느다란 한 획이 그어졌다. 그 아래로 푸른 안료에 물든 담백한 색면 하나로 바다의 존재감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생동하는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김현철의 진짜 풍경이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비움 전략은 그의 또 다른 대표적 장르인 초상화에서도 지극히 유효했다. 2008, 2010, 2017년 그는 초상화 전시를 차례로 가졌는데 이 일련의 전시는 <초상, 그 전신의 세계>라는 제하에 시리즈로 이어졌다. 그가 도록에서도 밝혔듯, 이때 전신(傳神)’이란, ‘초상화를 그릴 때 외모의 형사뿐만 아니라 내재된 정신성까지 사생해 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조선의 초상화는 이러한 정신성을 사생함에 있어 절제된 필선과 맑은 채색, 담백한 구도를 구사함으로써 중국의 초상과 달리 여백을 최대한 활용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조선의 인물상은 그 인물이 갖춘 기품과 인격에서 스며 나오는 특유의 기운을 보다 긴장감 있게 드러내준다. 인물의 눈빛을 중심으로 안면 묘사는 극도로 섬세하게 이루어지는 한편, 의복표현은 가늘지만 선명한 선묘로써 단순화하고 나머지 배경은 말간 여백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이 여백은 다시금 인물 묘사를 보다 효과적으로 강렬하게 돋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백이 많은 것이 능사는 아니다.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은 <공재 윤두서의 초상> 작업에서는 적절한 터치들과 여백이 상생하며 표현적 측면이 극대화되었다. 작가가 초상화를 연구하던 중 이 윤두서 자화상을 보다가 문득 이건 완성본이 아닌데? 초본, 밑그림으로 남겨진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녹우당 종손인 윤형식선생을 직접 찾아뵙고 전해 듣자하니, 애초에 이 작품은 정본으로 옮겨지지 않고 초본 상태로 서책 사이에 끼워진 채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표구가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왜 정본으로 옮겨지지 않은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불현듯, ‘이 그림을 마저 그려 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300년 전에 나온 초본을 바탕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윤두서가 당시 주변인들을 그린 다른 초상화에서 그의 필치를 추측하며 그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관모와 옷을 그려 넣었다. (추정컨대 윤두서가 종이에 그리느라) 간략하게 처리된 원본 속의 얼굴에 표정과 생기를 더했다. 사실적인 피부표현에 공을 들이고 기존의 눈빛표현을 보다 강렬하게 터치하여 인물의 기운을 끌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바탕의 여백과 상생함으로써 극대화되었다.

3. 채우다.

이렇듯 비움은 항상 채움과 상생한다. 동양의 전통에서 유와 무, 실체와 허공은 기의 두 가지 양상이지만 완벽히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무와 유의 지속적인 전화 과정은 우주의 기운이 생성되는 운동을 추동하고, 이러한 운동이 만물을 싹트게 하며 세상의 천태만상을 낳는다. 그런즉 채움은 비움만큼이나 신중해야 한다. 김현철 작가는 우주의 기운을 포착하기 위해 채움을 실천하지만 언제나 그의 채움은 비움을 기약하는 채움이다. 그것이 산수든 인물이든 맑은 화면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맑은 화면은 현대인의 미감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그의 채움이 이처럼 전통의 현대적 변주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독자적으로 고안해내는 두 가지 전략 덕분이다. 우선 그의 첫 번째 전략은 화법에 대한 오랜 수련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그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최완수 선생의 제자로 시작해 간송 미술관의 연구위원으로 일하여 3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그는 전통화법에 대해 제대로 연구했다. 진경산수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화법을 고안해 냈을 뿐만 아니라, 초상화를 그릴 때도 대상 인물의 잠재된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철저한 고증을 이행했다. 그의 필치가 현대인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각 장르 특유의 화법이 지닌 탁월한 정통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오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채움 전략은 그가 고안해낸 특별한 재료 사용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서양화는 화면 위에 젯소를 올리고 안료들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화면을 일군다면, 동양화는 화면에 안료를 스며들도록 하는 방식을 위한다. 화선지에 먹물을 올릴 때 종이의 결을 따라 먹물이 번져나간다. 그러나 김현철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의도했던 형상이나 효과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종이 대신 천을 화면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실제로 전통화들은 비단이나 삼베 등의 천을 활용하기도 했던 바, 천을 활용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전통회화의 화법을 구현함에 있어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단은 종이 못지않게 번진다는 단점이 있었고, 삼베 또한 거친 직조의 결을 따라 안료가 번지기 십상이었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아사천, 린넨이었다. 그것은 삼베와 태생은 같지만 보다 현대적으로 제작되는 것으로서, 특히 그 뒷면은 삼베나 비단의 단점을 보완해주면서 전통적인 화법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질감을 선사했다. 또한 그는 현대 서양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작업을 하지만, 아크릴 물감 특유의 두터운 발림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서양화법과는 달리, 물감을 묽게 개어서 전통적인 진채화의 느낌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변용한다. 그리하여 화면에 안료를 스며들게 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질료적 조건을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사용하는 아사천과 푸른 아크릴 물감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질료는 실제로는 과거의 진채에 쓰이던 전통적인 질료의 명맥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그의 채움 전략은 단순히 옛 그림을 답습하는 데에 그치기보다 그것을 뛰어넘어 동시대의 시각적 층위에 적절한 것이 되어 현대인의 미감에 가닿는다. 자연이라는 조화 깊숙이 빠져들어 마음속에 풍광을 차곡차곡 쌓았던 그는 그 풍광을 충실히 담아내기를 위해 마음을 비웠고 화면을 비웠다. 그리고 그 빈 화면을 채움에 있어 동시대인의 감수성을 관통하는 독자적인 조형 전략을 구사한지도 어언 30년이 훌쩍 지났다. 이젤을 펼쳐놓고 수직으로 앉아 작업하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바닥에 화면을 펼쳐놓고 붓을 수직으로 세워 작업하기에 보다 육체적 소모가 큰 편이다. 그러다보니 작가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아직 더 연구하고 더 그리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세월이 무심하게도 이만큼이나 흘러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다 비웠는데 그림욕심은 못 비웠나보다. 하지만 그 욕심 덕분에 우리는 그의 청명한 그림들을 계속 만나볼 수 있을 테니, 그 욕심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김나리 (독립기획자, 미술비평)


 

34 Prospect : Nature, Sea, Dokdo and Eyes of Artist - Eunsil E. J. Kho / April… 512
33 (전시) 전망_자연, 바다, 독도 그리고 화가의 눈 - 고은실 (2020.04.23) 539
32 수묵과 푸른 색조로 스며 든 시공간적 체험 - 도병훈 (facebook / 2019. 08. 21) 701
31 담다, 비우다, 채우다 - 김나리(옆집에 사는 예술가 /2018) 690
30 공재 윤두서 초상 - 김종길(facebook / 2018.08.25) 605
29 금릉 김현철 개인전 <누구나 자신만의 바다를 품고 있다> - 김석 (faceboo… 554
28 푸른 바다를 담은 진경(眞景), 금릉(金陵) 김현철(金賢哲)의 그림 - 도병훈 (fac… 703
27 금릉 김현철의 ‘비운 풍경’ 보기 - 도병훈 (facebook / 2017. 06.26) 570
26 (전시 서문) 금릉 김현철 화백 초상화전에 부쳐 - 최완수 (2017.10.18) 699
 1  2  3  4